"한국표준이 4차산업혁명 국제표준 되게 만들것"
조선일보 최현묵 기자
[공기업 24시] 이상진 한국표준협회 회장
"골프장·택배·장례식장 등 서비스 분야 KS인증 늘리면 국제경쟁력 높일 수 있어"
"표준협회는 정부 지원금 한 푼 없이 자체 사업으로 먹고사는 조직인데, 조직 문화는 마치 공공기관 같았습니다. 손익을 철저히 따져서 적자가 나는 부문은 과감히 도려내는 작업부터 하고 있습니다." 이상진(56) 한국표준협회 회장은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한국기술센터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 3월 취임하고 438명의 직원 월급 줄 생각에 밤잠이 안 온다"며 이같이 말했다. 표준협회는 작년에 매출 996억원, 영업손실 18억원을 기록했다. 16년 만의 적자였다.
표준협회는 'KS(한국공업표준규격)'로 대표되는 국가 표준을 제정·인증하는 기관이다. 산업표준화법에 명시된 단체지만, 2015년 공공기관 지정이 해제되면서 국가 예산은 지원받지 않는다. 이 회장은 "정부가 3년 전부터 KS 인증을 경쟁 체제로 전환했다"며 "새로운 경영 환경에 맞춰 표준협회의 생존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진 한국표준협회장이 지난 11일 서울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세계 각국이 벌이는 치열한 ‘표준 전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 회장은 “회장 취임 후 넉 달간 100여 명의 직원과 일대일 면담을 하며 아이디어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29년간 공직에 있었다. 경북 안동 출신으로 안동고, 고려대 경영대를 나왔다. 1988년 32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작년 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치고 지난 3월 표준협회장에 취임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소프트웨어진흥과장, 통상협력국장, 대변인, 무역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거쳤다.
수익성 개선을 위해 이 회장은 KS 인증 대상을 기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까지 넓히고 있다. 이 회장은 "1961년 정부가 제조업 제품에 KS 인증을 의무화한 건 제품의 안전도를 높여 국산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였다"며 "그 결과 우리 제조업은 경쟁력을 높여 수출 산업으로 도약했고, 대한민국의 산업화가 이뤄졌다"고 했다.
서비스산업도 제조업처럼 KS 인증을 통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이 회장 주장이다. 그는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의 노동생산성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라며 "서비스업 KS 인증을 확대하면 표준협회의 수익이 늘어나는 것도 있지만, 우리 서비스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2008년 콜센터부터 시작된 서비스 분야 KS 인증은 현재 골프장, 택배, 이사, 여론조사, 장례식장까지 총 14개 분야로 늘었다. 이 회장은 "골프장의 경우 캐디 등 직원들의 교육 훈련과 클럽하우스 등 시설에 대한 평가는 기본이고, 티오프 간격을 7분 이상으로 유지하는지 등을 꼼꼼히 살펴본 뒤 KS 인증을 준다"고 했다.
표준협회는 ISO(국제표준화기구) 국내 인증도 대행하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가 있는 ISO는 세계 163개국 정부가 모여 각종 제품의 국제표준을 정하는 최고 권위 기구다. 현재 ISO 내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스마트공장·스마트시티·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의 국제표준을 정하는 일이다. 이 표준 전쟁에서 승리하는 국가는 미래 산업 경쟁에서도 우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표준협회는 4차 산업혁명의 국제표준을 정하는 각축전에서 국가대표의 역할도 맡고 있다. 이 회장은 "미국, 중국, 독일, 일본 등 내로라하는 나라들이 저마다 자국(自國)의 표준을 국제표준으로 만들려고 한다"며 "물론 정부가 노력해야겠지만, 표준협회도 할 일이 많다"고 했다.
표준협회는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의 표준기구 관계자들과 교류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 회장은 "ISO에선 각국이 국력의 차이에 상관없이 각자 한 표씩 행사한다"며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우리가 구축한 표준ㆍ인증 시스템을 개도국에 전수해 놓으면 한국의 영향력이 올라가는 것"이라고 했다.
'미래 표준 전쟁에서 결국 미국이나 중국이 승리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이 회장은 "미국과 중국, 미국과 유럽이 서로 양보 없는 경쟁을 하는 상황이 우리에게 불리하지만은 않다"며 "미국과 중국이 표준 전쟁에서 서로 승리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중립적인 대한민국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끝>